진압작전 후 미소 띤 사령관, "광주에 포 못 쏜다" 버틴 준장(오마이뉴스)

작성자 : 518유족회

작성일 : 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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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 5·18과 장군들

[정성일 기자]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5·18 항쟁이 있었고 대한민국 국군에 의해 수많은 광주 시민들이 학살됐습니다.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킨 전두환 신군부에 의한 학살을 막고자 했던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사령관 윤흥정 중장, 31사단 사단장 정웅 소장, 육군기갑학교장 이구호 준장 등은 신군부의 유혈진압에 반기를 들고 유혈진압을 막기 위해 애썼습니다. 이들 가운데 윤흥정 중장과 이구호 준장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습니다.

윤흥정, 발포와 유혈진압을 거부하다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임관한 윤흥정 중장은 형제 장군이었습니다. 동생은 윤흥기 준장은 12.12 당시 제9공수특전여단장으로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나선 유일한 특전여단장이었습니다. (관련기사 : 1000만 관객 돌파 '서울의 봄', 정우성 이 대사는 사실입니다 https://omn.kr/26u75)

전교사는 1980년 당시 광주에 위치했고, 사령관이던 윤흥정 중장은 전라남북도계엄사령관으로 5·18 당시 광주 진압 작전 지휘관이었습니다. 당시 광주에는 7공수여단이 파견되어 있었고, 5월 19일과 20일에는 11공수여단과 3공수여단이 추가 파견되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윤흥정 중장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진압지시를 내리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군인들의 시민 폭력 사실을 알고 군복을 입기조차 부끄러워했으며, 공수여단의 발포 허용 요청을 거부하고 강경진압을 중지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에 신군부는 시위 진압에 소극적인 윤흥정 중장을 해임하고, 22일 새로운 전교사 사령관으로 소준열 소장을 임명했습니다.
이후 군의 유혈 강경진압으로 많은 시민이 희생됐습니다. 전교사 사령관직에서 물러난 윤흥정 중장은 예편해 체신부 장관으로 임명됩니다. 하지만 전두환씨가 제11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퇴임해 3개월 남짓한 장관 생활을 마쳤습니다.
윤흥정 중장은 1993년에는 정승화, 장태완, 김진기, 윤흥기 장군 등과 함께 12.12 내란범들을 고소했으며, 신군부 세력을 처벌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2002년 9월 15일 별세한 윤흥정 장군은 국립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15호에 안장되었습니다.

소준열, 학살 후의 얼굴

윤흥정 장군의 묘 6칸 옆 21호에는 윤흥정 중장의 자리에 교체되어 들어온 소준열 전교사 사령관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는 육사 10기로 전교사 사령관으로 부임한 후 3공수, 7공수, 11공수여단과 20사단은 무참한 광주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훗날 그는 1995년 전남일보와 인터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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