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보내온 아버지의 선물…43년 만에 빛 본 5·18 사진 [영상채록5·18](KBS뉴스)

작성자 : 518유족회

작성일 : 2024-03-27

조회수 : 1409

5·18 기록관 전시실에 들어서자 아버지의 사진과 아들의 그림이 걸린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전시회 제목은 <1980년 5월 단상>입니다. 아버지는 지금은 고인이 된 사진 작가 '최병오', 아들은 서양화가 '최재영' . 부자(父子)가 사진과 그림으로 전시회를 연 데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5·18 영상채록팀이 최재영 화가를 만나 그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위험한 동행'...참혹한 5·18 상황 사진으로 기록

광주 금남로 민주화운동기록관 3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큰 그림이 하나 걸려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중년의 남자 뒤에 앳된 얼굴의 청년이 서 있고, 그 너머로 무등산이 보입니다. 44년 전, 5·18 당시 상황을 사진으로 남긴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따라 나섰던 20살 청년의 모습입니다.


아버지 최병오 씨는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작가였습니다. 사진관은 당시 전남도청 바로 뒤편에 있어 당시 상황을 생생히 듣고 볼 수 있던 곳입니다. 언론의 취재와 보도가 통제되던 때, 최병오 씨는 사진기를 들고 참혹한 상황을 필름에 담았습니다. 당시 조선대 미대 1학년생이었던 아들 최재영 씨는 아버지를 따라나섰습니다. 위험한 일을 아버지와 아들이 동행한 것입니다. 


정치 군인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 무도하게 광주 시민들을 이렇게 탄압하고 있다. 굉장히 격앙된 분위기, 격노하시고...처음에는 혼자 나가시다가 이게 혼자 촬영해서 될 문제가 아니고 위험을 느끼셨는지 "다음부터는 너하고 같이 가야겠다. 네가 좀 가림막을 해주고 내가 뒤에서 찍을 테니까 같이 가자" 


항쟁 기간 열흘 중, 아버지는 매일 사진을 찍으셨고 최재영 씨는 그중 4~5일 정도를 아버지를 따라나선 거로 기억합니다. 최 씨는 아버지가 '이중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고 얘기합니다. "계엄군으로부터는 시민군이 자료를 남기려고 찍는다고 해서 굉장히 위해를 받는 상황이었고, 시민들 입장에서는 계엄군이 얼굴 식별하려고 찍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굉장한 위험과 두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1980년) 6월, 장마철 무렵입니다. 5·18 끝나고 학교에 가라고 연락을 받고 학교 갔다가 오후에 집에 왔는데, 아버지가 뭘 소각하고 계시더라고요. '아버지 뭐예요?' 했더니, '계엄사에서 현상소를 압수 수색을 하고 사진 작가들 집도 온다는 소문이 있어서 가족들이 해를 당할까 봐 저번에 찍은 필름을 태운다'고 하시더라고요." 


최재영 씨는 그때 모든 필름이 불에 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5·18이 돌아올 때마다 '그때 사진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데'라며 아버지께 원망 섞인 얘기도 하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불에 모두 태운 줄 알았는데…43년 만에 빛을 본 아버지의 유품 '5·18 광주의거' 필름

아버지 최병오 씨는 2001년 작고했습니다. 그 뒤로 최재영 씨는 5·18도, 사진도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는 중에 다른 필름들과 뒤섞여있는 그 필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5·18 광주 의거'. 그렇게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5·18 사진은 43년 만에 빛을 보게 됩니다.


"가슴이 떨리고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 기다리다가 포기했던 존재들이기 때문에…'과연 이 속에 뭐가 들어 있을까?' 확대경으로 대충 흐름만 파악하고 고민을 하다가 정말 의미 있게 쓰여져야 할 텐데 해서 일주일 정도 후에 5.18 기록관에 기증했습니다." 


남은 사진은 135점. 최재영 씨는 아버지와 본인이 같이 찍은 사진부터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사진은 많지 않았습니다. 아마 더 참혹한 상황을 기록했던 사진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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