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억 전하려면 그날 흔적 남은 공간에 주목해야”(한겨레)

작성자 : 518유족회

작성일 : 202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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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억을 전하기 위해 그날의 흔적을 안고 있는 기념공간에 주목해야 합니다.”

‘5·18과 기념의 공간’(미디어 민 냄)의 저자 정현애(72) 박사는 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과거의 의미 있는 사건들의 기억을 새롭게 재현하는 것이 기념이고, 공간에 반영한 것이 ‘기념공간’”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기억을 새긴” 기념공간은 기념물, 기념비, 기념상, 기념탑, 기념관 등의 ‘모뉴먼트’와 넓은 공간에 다양한 형태로 만든 ‘메모리얼’ 등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정 박사는 5·18기념공간의 변화를 세 시기로 나눠 고찰했다.

첫 번째는 ‘항쟁공간을 배제하고 방치한 시기’(1980~1992)다. 그는 “이 기간엔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기념공간이 거의 조성되지 못했고, 시민사회가 주도해 기념공간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청소차에 실린 희생자들의 주검이 묻혔던 망월동 구 묘지와 많은 5·18 참여자들이 잡혀가 갇혔던 상무대 옛터 등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는 ‘항쟁기억의 재현과 기념 시기’(1993~2007)다.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고 기념사업의 주체로 국가가 나서게 된 기간”이었다. 국가 주도로 민주묘지, 기념공원, 사적지 등이 만들어졌고, 시민사회에선 개인 열사들의 기억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세 번째는 ‘기념공간의 훼손과 왜곡 시기’(2008~현재)다. 정 박사는 “5·18기록물이 유네스코에 등재됐지만, 보수정권에서 지역주의에 의한 역사 왜곡을 심화시켰던 시기”라고 지적했다.

이 책은 그의 전남대 박사학위 논문 ‘5·18기념공간의 변화와 활용연구’(2018)를 읽기 쉽게 풀어쓴 것이다. 정 박사는 “5·18기념공간이 오월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공간으로 형성·활용되는가를 묻기 위해 시작한 연구 주제였다”고 말했다. 그는 “5·18 기념주체가 민간에서 국가,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다양화되면서 5·18 기념공간은 확장됐지만, 점점 호남이라는 지역에 한정됐다”고 짚었다.

전국의 5·18기념공간은 152곳이다. 광주는 68곳, 전남 76곳, 전북 4곳, 수도권 4곳 등이다. 정부와 제도권에서 조성한 곳이 127곳(83%)에 달한다. 정 박사는 “기념공간을 만드는 주체가 국가인가 시민인가에 따라 기념공간의 모습도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유가족이 조성한 망월동 구 묘지와 국가에서 만든 국립5·18민주묘지는 “형성 과정이나 공간 자체의 모습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게 정 박사의 분석이다.

5·18 상징적 공간인 옛 전남도청이 애초 구상대로 기념관으로 조성되지 못했던 경위도 살폈다. 1995년 ‘5·18기념사업 종합계획’엔 옛 전남도청에 기념관을 조성하기로 했지만, 전남도청 청사 이전이 늦어지면서 기념관 건립 사업이 흐지부지됐고, 2002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계획이 발표됐다. 정 박사는 “일부 공간이 훼손될 수밖에 없었지만, 옛 전남도청을 가급적 훼손하지 않기 위해 주변의 땅을 파서 지었다”고 지적했다.

5·18 기념공간 중 개인 가옥 4곳이 포함됐다. 광주의 고 홍남순 변호사 가옥은 5·18 당시 민주인사들이 대책을 논의했던 곳이다. 광주 녹두서점은 5·18 상황실 역할을 했다. 서점 안 부엌 딸린 작은 방이 정 박사 부부의 신혼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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