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청문회가 열리다(인천투데이)

작성자 : 518유족회

작성일 : 2024-11-19

조회수 : 560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36년 전인 1988년 11월 18일, 전두환이 광주에서 벌인 학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국회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청문회가 열렸다.

앞서 1988년 제13대 국회는 10월 국정감사권 부활에 이어 11월 2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제5공화국 비리를 조사하는 청문회를 개최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시작된 청문회

1988년 제13대 국회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자, 다수를 차지한 야당은 10월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부활시켰다. 이어 11월 2일, 제5공화국의 권력형 비리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청문회가 열렸다.

국내 전체로 번진 5공 비리 진상규명 운동

1988년 11월 5일, 부산에서는 '전두환·이순자(전두환 아내) 구속을 위한 범국민 총궐기 대회'가 열려 시민 3만여 명이 참가했다. 집회 후 참가자들은 부산직할시 중구 남포동에서 서면까지 평화 행진을 벌였다.

11월 18일에 열린 광주특위에서는 얼마 전까지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러나 전두환은 광주 시민을 향한 공수부대의 발포 명령 등 자신이 광주에서 벌인 만행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해 많은 의원들의 질타와 국민의 공분을 샀다.

특히, 전두환을 비롯한 5공 비리 증인들이 묵비권을 행사하자, 당시 초선 의원이자 훗날 대통령이 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럼 국민의 비난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 본 의원은 풀리지 않은 의혹이 엄청나게 남아 있다"고 일갈했다.

또한, 전두환이 형식적인 답변만 하며 기만적인 태도를 보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명패를 증인석으로 던지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 사건으로 노 전 대통령은 이른바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다음 날인 11월 19일에는 '전두환·이순자 구속 처벌을 위한 제2차 부산 시민 궐기 대회'에 1만여 명에 이르는 학생과 시민이 참여해 부산진역에서 서면까지 행진했다.

백담사로 은둔한 전두환

청문회는 전두환 정권의 비리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사실들을 국민 앞에 처음으로 공개했다는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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