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518유족회
작성일 : 2025-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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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이 ‘시민군 오인 사격’으로 인해 촉발됐다는 왜곡 주장이 제기되면서 광주 송암동 일대에서 벌어진 11공수여단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당시 광주에 투입된 11공수여단은 오인교전 직후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는 사실이 진상규명을 통해 밝혀졌는데, 일부 극우매체를 중심으로 악의적인 허위 사실이 유포되고 있어 왜곡·폄훼를 근절할 강력한 처벌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7일 5·18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지난해 6월 양민학살 사건 연루자인 최웅 전 11공수여단장과 62·63대대 소간부 및 사병 등 계엄군 9명을 집단살해죄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은 1980년 5월 24일 전투교육사령부 보병학교 교도대대와 오인교전을 벌인 뒤 송암동 주민들을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위의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송암동 학살 사건’은 1980년 5월 24일 계엄군이 광주 외곽 봉쇄작전 중 송암동 일대에서 다수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사건이다.
조사위는 당시 계엄군의 단순한 오인 사격이 아닌 무자비한 총격과 보복 살인을 조사 과정에서 확인했다.
5·18 직후 11공수여단이 작성한 ‘광주소요사태 진압작전(전투상보)’에도 시민군으로 오인해 사격이 이뤄졌다는 정황이 담겨있다.
당시 선두 529호 장갑차 캘리버 50을 담당한 김 상병은 “효천 삼거리 도착 전 나주에서 광주 방면으로 이동하는 시위대 차량과 무장 시위 대원을 목격했고,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기관총 사격을 시작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529호 장갑차의 발포이후 11공수여단 전체로 총격이 확산됐고, 이 과정에서 효덕초등학교 4학년 전재수군과 전남중학교 1학년 방광범군 등 무고한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
11공수여단은 오인 교전 이후 인근 민가에 대한 수색을 진행했고, 무장 시위대 색출을 명목으로 민간인들을 연행하고 살해했다.
이 과정에서 11공수여단 62대대는 일성마을에서 권근립, 임병철, 김승후씨를 총살했다.
이들의 사망 원인은 근거리에서 여러 발의 총상을 입은 것으로, 이는 명백한 보복 살인이었음을 보여준다.
진상규명을 통해 ‘시민군 오인 사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혔지만, 인터넷 매체인 스카이데일리는 지난 2월 금남로 일대에 5·18특별판을 배포하며 왜곡 보도를 일삼고 있다.
신문 12면에는 ‘송암동 오인 사격은 게릴라 전술에 군이 당한 것’이라는 제목의 왜곡 기사를 보도했고, 무장한 시민군이 군 무전을 도청하고 위장 제보를 통해 계엄군 간의 교전을 유도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쳤다.
또한 시민군이 계엄군으로 위장해 접근하거나 매복 공격을 통해 교전을 유발했다는 주장을 담았고, 교전 당사자와 주민 목격자의 증언이라며 편집된 내용을 제시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조사위의 진상조사 결과와 명백히 배치되는 허위 사실로 드러났다.
조사위는 송암동 사건 당시 계엄군 간의 오인 교전은 있었으나, 사전에 이동 경로 및 전술적 이동 원칙을 제대로 협조하지 않은 군의 과실이 주요 원인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이수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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