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정부조직의 가장 큰 문제는 겉으로는 효율을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권한의 집중과 기능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 같은 거대 부처가 행정 전반을 장악한 구조 속에서, 보훈부와 같은 중소형 부처들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제도적 한계에 갇혀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문제를 넘어, 국가 철학의 불균형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거대 부처의 권한 집중, 국가의 균형을 무너뜨리다
현재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치, 공무원 인사, 재난안전, 정부조직 관리 등 국가 운영의 거의 모든 축을 쥐고 있다.
본래는 지방의 자율을 보장하고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부처였지만, 지금은 지방정부와 타 부처의 결정권까지 좌우하는 ‘초거대 관료 조직’으로 변했다.
기획재정부 역시 예산, 세제, 공공기관 관리 등 국가 재정 전반을 조정하면서 ‘왕부처’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국가의 모든 정책은 결국 기재부의 예산 심사를 거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중소 부처들의 정책이 축소되거나 보류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국민 중심 행정’이 아니라 ‘부처 중심 행정’만 존재한다.
거대 부처가 권한을 쥐면 행정은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그만큼 국민의 다양하고 세밀한 목소리는 체계 안에서 사라진다.
이름만 ‘부(部)’로 바뀐 보훈 행정의 현실
지난해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되었을 때, 많은 국민들은 "이제는 진정한 예우 행정이 시작되겠구나" 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승격 1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예산도 조직도 제자리다.
‘부’로 불리지만, 실제 권한과 인력은 여전히 ‘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보훈부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명예를 지키고, 유가족의 삶을 돌보는 국가적 책무를 담당한다.
그런데도 예산은 기재부의 심의에 묶이고, 조직 운영은 행안부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승격의 의미가 ‘책임과 자율성의 확대’가 아니라 ‘간판 교체’에 머물렀다는 것은 국가 행정의 구조적 실패를 보여준다.
보훈 행정, 통합과 일원화로 바로 세워야
현재 보훈 관련 기능은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다. 국가유공자의 의료 지원은 보건복지부로, 국가기념사업의 일부는 행정안전부로, 시설관리와 예산은 기획재정부의 심의 대상이다. 결국 한 가지 정책을 완성하기 위해 세 개의 부처를 거쳐야 하는 비효율이 반복된다.
이제는 이러한 구조적 혼선을 바로잡아야 한다. 보훈 행정의 모든 기능은 국가보훈부로 일원화되어야 하며, 타 부처에 흩어진 관련 업무는 철학적 정체성에 맞게 이관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승격의 완성이다.
희생과 예우, 기억과 명예는 단순한 복지 사업이 아니라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에 바라는 행정의 균형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기치 중 하나는 "유능한 정부, 국민 중심의 행정"이다.
그러나 거대 부처 중심의 관료 체계가 그대로라면 그 유능함은 국민에게 체감되지 않는다.
진정한 개혁은 권한이 아니라 책임의 균형에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행안부의 기능 중 일부는 지방정부와 전문 부처로 과감히 분산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인사·조직·예산까지 중앙이 통제하는 것은 분권의 취지에도, 민주행정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둘째, 기획재정부의 예산 권한을 재조정하여 각 부처가 스스로의 정책 방향과 책임을 지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정책 결정권이 예산 편성권보다 뒤에 있다면, 그 부처의 존재 이유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셋째, 보훈부를 비롯한 가치 중심형 부처들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보훈, 복지, 환경, 인권 등은 효율보다 국가의 품격을 다루는 영역이다. 이러한 부처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 정부는 비로소 국민에게 신뢰받는 균형 행정을 구현할 수 있다.
강한 정부보다 바른 정부가 필요하다
행정의 품격은 규모가 아니라 방향에서 나온다. 거대 부처가 힘을 내려놓고, 작은 부처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그 정부는 비로소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 지금 대한민국의 행정이 가야 할 길은 ‘집중’이 아니라 ‘균형’, ‘통제’가 아니라 ‘자율’이다.
국가보훈부의 승격은 상징이었다. 이제 그 상징이 실질적 권한과 책임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재명 정부가 국민 앞에 보여야 할 진짜 개혁의 모습이다.
행정이 국민을 향할 때, 비로소 정부는 크기가 아니라 품격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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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혁(5·18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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